ROBLOX DEFRAGMENT
EP.1-2 — TORSION
// OFFICIAL_DEFAULTU  ·  디폴투 기획·제작
▼   SCROLL   ▼
재판장은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재판장의 모든 인원들은 숨죽이고 있었다. 둠브링거가 직접 심판을 맡는다니, 최소 저 로안은 한쪽팔은 손상나겠구나, 생각하였다.
적당한 크기의 책상에 앉아 있는 둠브링거는 사슬에 묶인 채 고개를 숙인 죄수를 내려다보았다. 죄수의 형체는 몹시 불완전했다. 하반신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하얀 피부 위로 미세한 오류 코드가 지지직거리며 피어올랐다.
DOOMBRINGER
"eco_404."
둠브링거의 묵직한 음성이 재판장에 울려 퍼졌다.
DOOMBRINGER
"커넥트 라인을 자르고 한 행성의 모든 로블록시안을 위협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기계음 섞인 목소리.
ECO_404
"조건부... 복수..."
하지만 그것조차 에코의 몸에선 난 주파음 때문에 굉장히 작은 옹알이로 들렸을 것이다.
DOOMBRINGER
“애초에, 커넥트 라인을 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니, 처음부터…”
둠브링거의 머리는 굉장히 복잡해졌다. 그는 꽤나 감정적이었다. 특히 머리가 복잡해지면 쉽게 화가 났었다. 하지만 그는 신성한 법원에 있었기에, 화를 최대한 참고 다시 우렁차게 말하였다.
DOOMBRINGER
“도대체… 그 우주엔 어떻게 있던 것이더냐?”
에코의 눈동자 속에 거대한 난기류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공허의 깊은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려진 자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으나, 에코의 눈엔 수천 개의 찢겨나간 기억의 파편들이 에코의 머릿속을 지나다녔다.
둠브링거는 단상에 묵직한 두 손을 얹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굳은 얼굴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야 했지만, 그는 여전히 같은 색을 유지하였다. 그에겐 음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듯 보였다.
DOOMBRINGER
"너에게 이 테러를 지시한 자가 누구냐. 과거의 연구부 패당이냐?, 아니면 밴랜드 깊은 곳에 숨어든 반란의 조짐이냐…? 답하라, 에코!"
에코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ECO_404
“조건부.. 복수.”
이번엔 얼추 크게 들렸다. 답을 들은 둠브링거는 밀리지 않고 바로 압박하였다.
DOOMBRINGER
"웅얼거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행성의 생명선을 끊어 수많은 로블록시안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이유가 고작 그 수수께끼 같은 대답 하나란 말이냐!"
둠브링거의 목소리에 거친 분노가 실렸다. 법원부를 채운 법관들과 배심원석의 로블록시안들이 불안하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죄인의 자리에 묶인 에코는 둠브링거의 눈을 직시하지도 않은 채, 공허한 시선을 허공으로 향했다. 그 눈동자 안에서 난기류처럼 얽히던 글리치 문자들이 순식간에 조합을 바꾸었다.
DOOMBRINGER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놈이 저지른 짓은 의도되었든 안되었든 명백한 파괴 행위이자 제국의 안전을 위협한 중범죄다!"
둠브링거가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쿠쿵, 하는 육중한 파동이 재판장 바닥을 울렸다. 배심원들은 급히 조용해졌지만, 에코는 정말 불안하게도 조용했다. 그저 둠브링거의 황소같은 숨소리와 에코의 주파음이 사방으로 뿌려댈 뿐이었다.
그때였다. 에코의 상반신을 감싸던 주파음이 급격히 변하더니,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낯설고 이질적인 음성이 에코의 입이 아닌, 몸에서 흘러나왔다. 로블록시안 제국의 그 누구도 사용하는 법이 없는, 오직 아주 특별하거나 높은 지식을 지닌 극소수만이 다룰 수 있다는 고대의 문자.
ECO_404
"I... am... sorry..."
모두가 정말 조용했었지만, 지금은 더욱 더, 소리의 주파수가 음수로 접어든 것 같았다. 팽팽한 정적이 감돌았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노련한 배심원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심원
"저, 저 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건가? 제국 표준 루아 구문이 아니다!"
에코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몸 구석구석에서 더 또렷한 고대 어휘가 터져 나왔다. 에코의 몸에 얼굴이 왔다갔다 하는 느낌도 들었다.
ECO_404
"WHY ME?? WHY... ALWAYS ME...!!"
배심원
"ㅈ..저게 뭐야?!"
배심원석이 발칵 뒤집혔다. 로블록시안 제국 내에서 한번도 들은 적 없는 기괴한 음성이 에코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배심원
"저 자는 이 나라 출신이 아니다! 이 우주를 넘어, 혹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게 틀림없어!"
"저 이질적인 구문을 해독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한가?"
다른 배심원
"청랑님을 불러오자! 2대 통치자이신 청랑 님이라면 알 수 없는 언어를 정화하고 알아들으실 수 있을 것이다!"
배심원들과 법원부 관계자들이 동요하며 청랑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정화의 힘을 가진 청랑이라면 저 미쳐버린 결함 덩어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상 위의 둠브링거에게 배심원들의 그런 대화는 분노를 부채질하는 기름일 뿐이었다.
DOOMBRINGER
"청랑 님을 부른다고? 고작 이 따위 하반신도 없는 오류 덩어리 하나 때문에 통치자 님의 귀중한 시간을 뺏겠다는 말이냐!"
둠브링거의 몸 전체가 더욱 빨갛게 되는 것 같았다. 저 양동이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율법과 정의를 집행하는 법원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죄수 하나 제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과 에코가 내뱉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는 그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
DOOMBRINGER
"네놈의 그 불쾌한 조건부 복수든, 알아들을 수 없는 외래어든... 내 주먹 앞에서 직접 털어놓게 해주마!"
둠브링거는 이성을 잃었다. 단상에서 뛰어내린 그의 거구는 거센 압력을 내뿜으며 에코를 향해 직진했다. 둠브링거는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오른주먹을 높게 치켜들었다. 묵직한 오라가 그의 주먹에 깃들며, 당장에라도 에코의 상반신을 산산조각 낼 듯한 폭멸의 궤적을 그렸다.
DOOMBRINGER
"죽어서 공허로 꺼져라, 결함 덩어리!!"
둠브링거의 주먹이 에코의 얼굴 바로 앞까지 육박한 그 절체절명의 순간—
[ 치직—! ]
극대화된 감정의 균열을 타고 널 존의 오로라가 재판장 전체를 덮쳤다. 찰나의 순간, 둠브링거와 주변 집행관들의 시야로 일그러진 환영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아케인의 회색 기둥들, 칠흑 같은 밴랜드의 단형대,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은하계의 지평선... 수많은 기억의 파편이 찰나에 스쳐 지나갔다. 그래. 모두다 환각이었다.
에코가 있는 장소는 로블록시안 정부 지하. 로블록시안들에게는 소문같은 곳이지만 존재했던 유일한 공식적인 공허 입구.
판결은 최고형, 공허형이었다.
집행관들에게 끌려가 우주의 바깥, 칠흑 같은 공허를 향하는 통로 앞에 선 에코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그를 밀어내는 집행관의 손길에 밀려 어둠 속으로 추락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데이비드의 탄생? 가족들의 죽음? 할머니를 믿었던 잘못?...
그 모든 변수가 에코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완벽한 루프를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로블록시안 제국 정부 내부의 사택.
디폴투는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어냈다. 거울 속의 자신은 평소처럼 능청스럽고 완벽한 최연소 활동부 부대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세면대 옆에는 의사가 건네준 작은 약병이 놓여 있었다.
'웬만한 트라우마 진정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부작용이 심하지만, 환각을 완전하게 차단해 줄 마약 급의 성분을 넣었습니다. 아직 임상 테스트 단계입니다만...'
의사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멤돌았다. 디폴투는 가만히 약병을 바라보았다. 뚜껑을 열자 알 수 없는 기묘한 루아 스크립트 냄새와 함께 독한 향이 흘러나왔다.
DEFAULTU
"아니 걍... 이건 마약이잖아.."
디폴투는 허탈한 실소를 터뜨리며 약병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뒀다. 그리고 디폴투는 '아... 저거 분리수거해야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한 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에는 한구석 멍하니 서 있는 베이비블록시안 윈디가 보였다. 팔다리가 기괴할 정도로 짧고 표정 하나 변화 없는 R4 장애의 몸. 윈디는 디폴투를 바라보더니 특유의 무뚝뚝하고 건조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WINDY
"디폴투. 같이... 놀자."
그 음성에는 어떠한 억양도, 고저도 없었다. 하지만 디폴투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무거운 죄책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맷돌처럼 굴러떨어졌다. 차마 윈디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디폴투는 고개를 돌렸다.
DEFAULTU
"미안하다, 윈디. 순찰 일정이 있어서 지금 나가야 해."
WINDY
"바빠?"
DEFAULTU
"그래, 아주 바빠."
디폴투는 가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뒤돌아서는 그의 등 뒤로 윈디의 미동 없는 시선이 오랫동안 박혀 있었다. 디폴투는 자신이 윈디를 꺼리는 진짜 이유가 그 순전히 무표정함과 감정 없는 로블록시안과 다른 모습으로부터 나오는 거리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는 자신을 항상 혐오했다.
같은 시각, 우주 외쪽에 위치한 공허.
에코는 하염없이 아래로, 더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공허의 규칙에 따라 온몸의 인격 코드가 하나씩 해체되고, 사지가 비틀리는 Null zone 현상이 시작되었다.
ECO_404
"아... 아아아..."
그의 존재 자체가 가루가 되어 '더미 데이터'로 스러지려던 그 순간, 공허의 공간 사방에 박혀 있던 사슬들이 에코의 널브러진 팔다리를 거칠게 꿰뚫었다.
[ 콰아아아! ]
"..."
자신의 최후가 자신의 일생과 매우 비슷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비극적인 자신도 약간이나마 희망을 가졌었고,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
"도대체 어떤 희망에 매달렸던 것일까."
"........"
"도대체 누구를 의지했던 것일까."
"............."
"이 빌어먹을 인생은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것인가."
"."
끝이 났다.
그렇게 그는 끝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
"...."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러 마침표가 모였다.
수많은 마침표들이 모여 더이상 멈춘다는 것이 아닌, 여운과 망설임, 답답함.
ECO_404
"아직 할일이 많은 것을 깨달았다."
공허 곳곳에 수많은 결함들이 그의 격정적인 감정에 반응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과거 로블록시안 정부의 게으른 직원들이 처리하기 귀찮아 우주 어딘가에 몰래 열어둔 공허의 문 틈새로 몰래 버렸던 무수한 오류와 버그, 그리고 파기된 인격 데이터들의 집합체였다.
검은 글리치 액체가 에코의 몸 구석구석을 관통하여 쏟아져 들어갔다. 밴랜드에서 희생당했던 기형적 로블록시안들의 원한, 버려진 스크립트들의 증오, 그리고 억압받았던 자들의 사상이 에코의 빈껍데기 속에서 거대하게 동화되기 시작했다.
신원확인=eco404=실패
오류데이터=100%=침투
새로운=개체지정=알수없음
그 순간, 에코의 궤적 위로 결함이 자아낸 거대한 빛의 절경이 번뜩였다. 지독하게 아찔한 광휘였지만 그 눈부신 껍데기 아래 가득 찬 증오의 균열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그 누구도, 어떠한 필멸자도 감히 대적할 수조차 없는 파괴적인 에너지의 기둥이었다.
그 주변에는 그를 애도하고, 한탄하고, 애원하는 여러 인격들이 에코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는 자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에코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고, 그의 몸 전체는 그의 일생처럼 어둡게 변했으며 그 자리에 공허한 흰빛 글리치가 들어찼다.
그는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
증오와 복수심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정말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RE-DEFRAG된 자.
'언노운'의 탄생이었다.
ZI존블록시콘에 올라탄 디폴투는 허공을 가르며 우주 구역을 순찰하고 있었다. ZI존블래스터를 다듬는 그의 손길은 언제나 완벽했고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은 여전했다.
그때, 디폴투는 저 멀리 정말 대놓고 이질적인 문 하나가 우주 한복판에 덩그러니 떠있는 것을 보았다.
DEFAULTU
"뭐지...? 관리자용 폐기 통로인가?"
디폴투는 경계심을 끌어올리며 문을 향해 접근했다. 긴장 반 호기심 반으로 그 문의 손잡이를 잡고 연 순간—
지҈̱̘͔͓̱́̾̌͂̌̊̋̾̅͌͆͛̂̊̔ͅ지̶̭͎̗͎̱̟̌̓̑͊͂̄직҉͉͖̱̖̀͆̏͌͑͋̍̿̆͌̓͛ͅ?̶͇̦̮͍̱̙̀̂̊́̌̎̽̄̀͗͒͛́͌
문 너머의 공허에서 분출된 극도의 압력이 디폴투를 덮쳤다.
그리고 문 앞에 있는, 이곳과 다른 현실감을 지닌 존재.
팔을 자유롭게 꺾을 수 있는, 하반신이 없는 무언가.
온몸이 지지직거리는 글리치로 도배된 검은 괴물.
DEFAULTU
"..??"
잠시 몇초의 정적이 지난 후-
언노운의 결함가시가 디폴투를 향했다.
UNKNOWN
"#####"
언노운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날카로운 결함 가시가 디폴투를 꿰뚫었다. 디폴투가 자랑하는 ZI존블록시의 방어막은 허망하게 깨어져 나갔다.
DEFAULTU
"?!”
단 한 번의 일격. 디폴투의 명치가 정확하게 글리치화되어 파괴되었다. 언노운은 끔찍하게 서늘한 눈빛으로 디폴투를 공허로 던졌다. 그리고 아무 죄책감도 없이 디폴투를 바라보며 문을 닫아버렸다.
차가운 공허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디폴투의 의식이 아득해져 갔나.
DEFAULTU
'이대로… 이렇게..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하고 죽게 되는건가…?'
자신의 몸이 데이터 가루로 흩어지려던 바로 그 순간, 흑백의 정적 속에서 한 존재의 단아하지만 호탕한 음성이 디폴투 몸 전체를 울렸다.
"각본대로 흐르는 세상을 무슨 재미로 바라보겠는가?"
[계약 성립: ???? 부여]
그는 광활한 멀티버스의 비틀린 궤적을 따라 "디케잉 윈터"의 아득한 눈이 디폴투의 위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END OF EPISODE — ROBLOX DEFRAGMENT